“이미 살아난 소망” (마태복음 9: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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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살아난 소망”     (마태복음 9:14-26) ▨ Big Idea : “우리 안의 자기 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참된 소망으로 믿어라. 소망되신 주님이 우리를 일으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0 서론 [여는말]
 우리는 성경 66권 속에서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봅니다. 살아가면서 정말 닮고싶은 사람을 만나기도하고, 정말 멀리 두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닮아가고 싶은 사람을 보고 배웁니다. 그런데 우리는 멀리두고 싶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볼 사람들은 우리가 정말 매일 매일 닮아가고 싶은 예수님, 그리고 닮고 싶지않지만,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율법학자 바리새인,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가진 한 관리와 혈루증 여인을 만납니다. 예수님과 두 유형의 사람들을 살펴보며 주의 뜻을 배우고 오늘 하루를 살아냅시다.
#1 [본론#1]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 vs 예수님(9:14-17)
• 방금읽었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14절입니다.
[마태복음 9:14]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우리는 여기서 그 때의 시기를 알면 이 대화의 의미를 더욱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 그 때는 예수님이 바로 식사를 하고 계실 때였고, 이 식탁은 누구와 밥을 먹는 자리였습니까? 바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당시 ‘세리’는 나라에 대한 의를 저버리고 돈을 선택한 자들, 나라를 팔아넘긴 죄인의 대명사였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상종하고 싶지 않은자들, 또 함께하고 싶지도 않은자들, 함께하면 안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과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한다는 것은 동등한 존재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예수라는 선생이 이해가 안됐습니다. 도대체 왜 저 더러운 죄인들과 밥을 먹는가? 죄인과는 상종하면 안되거든요. 의인들은 구별되어야하거든요.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도 이 사실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이 식사 먹는 문제와 연결될 수 있는 ‘금식’이라는 종교적 행위를 왜 하지 않느냐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통과 너무 다르게 행동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 의문이었던 것 같아요.
 누가복음 7:34 의 내용을 보면, 그 때 당시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인자(예수님)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 보라 (저 예수님)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동일한 상황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 분은 너무 잘 먹고 다니는 것 같아? 뭐야? 이런 질문으로 들려요, 왜 당신은 우리와 다르게 저 죄인들과 어울리고, 또 심지어 금욕도 하지않는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심지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지금껏 쌓아온 전통과 완전 반대로 행동하는 예수님께 물어보는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한번 보시죠. 함께 15-17절 읽겠습니다.
[마태복음9:15~17] 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우리는 이 식사 자리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죄인과의 식탁교제는 신랑되신 예수께서 이 자들을 초대한 기쁨의 잔치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즉 예수께서 이 죄인들을 초청하시고 이들이 예수께 나아오면 예수님은 그들을 받아주시고, 환대해주시고 같이 교제하십니다. 이전에 기록되었던 구약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회복을 결혼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과 식탁교제를 나누는 죄인들,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상종도 하지 못할 자들은 지금 예수님과 식사함으로 교제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용납과 긍휼에 함께하게 된 것이죠.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금식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할때가 아니다 신랑과 함께하는 잔치의 때다! 라고 얘기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새 포도주 이미지는 혼인잔치의 비유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기쁨의 복음은, 그리스도 없이 굳어버린 옛 틀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없습니다.
•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어제 주일 예배때 다루었던 것처럼,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쓸데없다, 병든자에게만 필요하다.”라는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즉 자신 스스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이 낡은 것에 익숙한자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메시아가 필요없습니다. 그저 이 자신들의 체계를 망가트리는, 이상한 사람만 눈에 보입니다.
 여러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속부터 썩어들어갑니다. 우리 자기밖에 모르는 자가 되지 맙시다. 남들의 상태를 비판하기 이전에 내가 원래 죄인이었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가 지금 서있는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까먹는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자체를 잊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없으면 안되는 존재들입니다.
• 이제 다음절을 읽을 것인데, 이때 또 시간선은 동일합니다. 이 말씀을 하실때, 공교롭게 지금 한 타이밍에 동일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예수님이 없으면 안되는 자들과 식사하셨고, 그것에 태클을 거는 예수님이 없어도 되는 자들, 예수님이 필요없는 건강한 자들이었고, 다음에 나오는 자들은 약자들, 주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봅시다.
#2 [본론#2] 12년된 여인들과 예수님(9:18-22)
우리 함께 18절부터 2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9:18~22]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 현재 두 명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관리, 그리고 혈루증 여인이죠. 이 두 인물은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관리의 이름은 야이로입니다. 그리고 그의 딸은 12살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공교롭게 이 혈루증 여인은 12년동안 이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야이로에게 딸은 12년된 소망이었습니다. 한 소녀가 태어나 12년 동안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동안, 한 여인은 12년 동안 피를 쏟으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삶의 궤적은 정반대였지만, 지금 두 사람 모두 인생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야이로도, 혈루증 여인도. 이것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둘이 상황은 다르지만, 둘 다 이 문제를 예수님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이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은 하실 수 있을꺼야! 하는 믿음으로 둘 다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이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아까 살펴본 율법교사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조되고 있습니다.
 
야이로
먼저 관리 야이로를 보겠습니다. 야이로라는 사람은 회당장입니다.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예요. 그러나 그는 18절을 보면, 절하며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지위가 상관이 없습니다. 회당장이면 아까 말한 바리새인이거나 비슷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으로 가서 말을 걸고 무릎을 꿇고 절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
혈루증 여인은 회당장처럼 위치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혈루증은 당시 부정하게 여겨졌기에,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21절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께 다가갑니다.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님께로요, 회당장은 그냥 예수님께로 갔지만, 20절을 보면 그녀는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을 만집니다. 떨렸을 것입니다. 혹여나 예수님이 더러운 여종아 저리로 가라 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딸아 안심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얼마나 안심되었을까요. 여기서 사용되는 구원하였다라는 말은 한국말에는 없는 뉘앙스입니다.(현재완료), 이런 느낌입니다. 이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만이 소망임을 믿고, 그분께 다가가야겠다 마음을 먹어 출발한 그 시점, 그 믿음을 가진 시점부터 너는 회복되었고 그게 지금 까지 이어졌다. 이 혈루증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돌이킨 순간, 너는 회복받았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녀가 나아갈 때, 주께서 그녀를 부르셔서 품으셨고, 그녀는 은혜로 용납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혈루증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를 보며, 다시한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 없으면 안되는 사람인가? 그 분만이 나의 소망인가? 아니면 바리새인처럼 내가 가진것이 너무나 많아서, 예수님이 필요없는자 이지 않은가? 돌아보아야합니다.
#3 [본론#3] 소망이 다시 일어나다.(9:23-26)
우리 이제 마지막, 23절부터 26절까지의 내용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9:23~26]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흔들립니다. 말버릇처럼. 즉 망했다. 이 나라는 망했다, 교육이, 교회가 큰일 났다고 소망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이렇게 될거야. 결국 큰일 날거야라고요.
본문에서 예수님이 드디어 회당장의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죽지않고 잔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니 조문객들이 비웃습니다. 야이로에게 이 딸은 소망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근데 그 딸이 죽었습니다. 소망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죽은게 아니라 자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니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그리고 25절에 무리들을 내보내십니다. 비웃던자들은 갔습니다. 이제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입니다. 야이로는 얼마나 떨렸을까요? 나의 12년된 소망, 그리고 그 앞에 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죠. 여러분 정말 소망이 없습니까? 내 인생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나라에, 정말 소망이 죽었습니까? 버젓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에 계시는데 정말 소망이 없습니까? 우리는 우리 입술의 말과 마음을 돌아봐야합니다. 자꾸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소망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망했어. 이런 말들을 입에 붙이고 살지 않는지 돌이켜봐야합니다.
 앞선 혼인집 비유에서 신랑이 빼앗겨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사건을요, 모든 이들은 그 현상을 보고 다 절망했습니다. 누구는 비웃었고 누구는 울었습니다. 그러고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소망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결론&적용]
▨ 축복
여러분 우리에게는 다시 사신 소망이 계십니다. 부활이요 생명 이미 살아계신, 다시 일으켜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이 필요없다는 듯이 살아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 없으면 안되는 자로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본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처럼 믿음을 가지고 내 유일한 살 길은 예수님이야. 나는 예수님 아니면 안돼. 이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 믿음을 가지는 시점, 그 선물을 누리는 시점에 예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달리다쿰. 우리 인생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절망감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사신 유일하신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자라면요.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진심으로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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